<다빈치 코드> 이후에 두번째로 접하는 추리물이다. 추리물을 읽겠다는 의도는 이전까지 전혀 없었는데 <다빈치 코드>를 읽고 흥미를 느끼기도 했고, 또 요즘 추리물이 눈에 띄게 많이 나오는 것 같아서 '읽는 사람이 많은 모양인데 어떤 매력이 있기 때문일까?'라는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그래서 빌린 책은 왠만한 사람도 이름은 한번 들어봄직한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
'결국은 모두 다 죽는다는걸까?'라는 정도의 생각 밖에 하지 못했다. 어렸을적 유치원에서 들어본듯한 'One little indian, Two little indian....'으로 시작하는 영어동요와 비슷한, 첫장의 <꼬마 검둥이 동시>에 의문을 가지게 되고 이어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여유로운 여름휴가인 기차여행에 마음을 놓다가도 뭔가 '이상하다'는 의심을 점점 품게 된다. 그리고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된다.
<명탐정 코난>과 <소년 탐정 김전일>의 첫부분에 나오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여러 사람들이 어떤 인물의 초대에 의해 섬의 별장에 모이게 되고, 그곳에서 연쇄적인 살인을 주인공들이 파헤쳐가는 이야기 말이다. 그런 만화의 내용이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모태로 한것은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이야기 구조가 흡사하다. 하지만 이 책이 더 놀라운 사실은, 이전에 언급한 만화들이 절대적으로 범인이 아닌 탐정인 주인공에 의한 추리내용을 독자인 우리가 알 수 있다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어떠한 추리내용도 전달 받을 수 없고 그저 살인당할 수 밖에 없는 등장인물들과 동일한 양의 정보 밖에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누가 범인인지 스스로 탐색해 내야 하고 그런 점에서 스릴감은 더 고조된다. 만화 주인공의 코난이나 김전일처럼 이야기를 해결해가는 주도적인 인물 없이 이런 완벽한 이야기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게 참으로 놀랍다.
새벽 1시 50분 정도에 읽기 시작한 책은 여름의 열대야도 서늘하게 느껴지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흡입력을 갖고 있었다. 바닥에 누워 온 몸에 선풍기 바람을 쐬며 책을 읽고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왜인지 나도 모르게 자꾸 방의 창문 밖을 쳐다보게 되었다. 방에 누워서 보면 앞집의 옥상이 올려다 보이는데 그 옥상 위에 있는 나무가, 평소에는 그냥 나무였거늘 오늘 새벽만큼은 나를 내려다보는 누군가로 느껴졌다. 내가 불을 켜놓은채 잠들은 줄 알고[누워서 책을 읽다보면 불을 끄지 않고 잘때가 많다.] 새벽 4시에 방문을 연 엄마는 나를 소스라치게 만들었다.
5시가 다 되서야 에필로그만을 남겨둔 상태. 그랬다. 결국은 아무도 없었다. '음? 이들 중에 아무도 범인은 없는걸까? 어떤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응징 받은건가?'라는 추리 아닌 추리를 할 정도로 나는 어느 누가 범인이고 어떠한 장치를 이용해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됐는지 전혀 짐작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에필로그와 책의 마지막 <고기잡이 배 '엠마 제인'호의 선장이 런던 경찰국에 보내온 편지 전문>까지 읽고 난 나는 말그대로 충격에 사로 잡혔다. '이럴 수도 있구나. 이게 추리소설이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전에 몇권의 만화책을 통해 띄엄띄엄 접한 추리물이나 <다빈치 코드>가 절대 범인이 아닌, 탐정인 주인공이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런 반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모두가 용의자인 상황을 만들어 냄으로서 모두가 범인이고, 사회적으로 고정관념으로 볼때 전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범인일 수 있다.'는, 모두가 아무도 모르는 어떤 누군가에 의해 죽어나가는 상황보다 더 무섭고 중요한 메시지를 알려주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