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에 톨스토이와 헤르만 헤세의 책들을 계획했던 터라 부랴 부랴 헤르만 헤세의 세번째 책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습니다. '이제 유리알 유희'를 구해서 봐야 하는데...
'수레바퀴 아래서'는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 그런지 데미안만큼 부담스럽지는 않았습니다. 데미안을 너무 어렵게 읽었던 기억이 가물 가물..
우리의 삶은, 특히 현대화된 도시의 삶은 경주장에서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치열한 경쟁이 항상 존재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이 이제는 사람들에게서 독립하여 멈추지 않는 거대한 수레바퀴처럼 우리들의삶을 위협하는 와중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수레바퀴에 깔리지 않기 위해서는 지치지 말고 노력하라고 격려아닌 격려를 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라는 소년도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 그리고 선생님들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모범적이고 순응적으로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한게 아니라 그들의 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삶의 끝이 어두운 터널로 향할수 밖에 없음은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어린 영혼들이(^^) 자연을 통해 영혼을 살찌우고 친구들과 우정을 쌓고 자신의 자아를 성장시켜가는 것을 배우는 것보다 먼저 남들과 경쟁하고 뒤처지지 않는 법부터 배우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옛날 부터 제가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아빠가 되면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애들은 땅을 밟고 살아야 돼" 하면서요 그러면 결혼해서 학부형이 되는 친구들이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미혼남의 환상이라고 하더라구요. ㅜㅜ
이야기가 딴데로 샜네요. 암튼 왜 이런 좋은 책들을 어렸을때 읽을 생각을 못했었나? 항상 그게 의문입니다.
*인상 깊은 부분*
그 누구도 불안과 절망에 싸여 허우적거리는 한스의 영혼을 들여다보지 못 했다. 한편 아무도 학교와 아버지, 몇몇 선생님들의 탐욕스러운 명예심이 연약한 소년의 영혼을 무참히 짓밟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 했다. 홰 한스는 예민한 소년기에 밤늦도록 공부에 매달려야만 했을까? 무엇이 그에게서 토끼를 빼앗았는가? 왜 낚시질과 산책을 못하게 했는가? 왜 그에게 하찮은 명예심과 공허한 이상을 심어 주었는가? 어째서 시험이 끝난 뒤의 휴식을 방해했는가? 마침내 지칠 대로 지친 노새는 길가에 쓰러지고 말았다. p114
"저기 저 사람들을 보세요. 저 사람들도 한스의 불행을 거든 셈입니다."
"우리 모두 이 아이에게 소홀했던 점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p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