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사비나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어느 날 한 철학자는 내가 말한 모든 것은 증명할 수 없는 관념에 불과하다는 글을 쓰면서 나를 "거의 있을 법하지 않은 소크라테스."라고 불렀어. 나는 지독한 모욕감을 느껴 분노에 차서 그에게 답장을 썼지. 이 우스꽝스러운 일화가 내가 겪은 가장 심각한 갈등이었어어! 당시 내 인생은 드라마틱한 가능성들 중에서 최대치에 도달한 거지. 우리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척도에 따라 사는 거야. 내 인생에 들어온 당신은 마치 난댕이 왕국에 온 걸리버 같은 존재였지."
사비나가 반박했다. 갈등, 드라마, 비극에는 아무런 뜻도 없고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그러므로 존경도 존중도 받을 만하지 않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것은 프란츠가 묵묵히 해내는 연구다.
프란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유한 사회에서는 손으로 일할 필요가 없고 정신적 활동에 몰두하지. 대학도 점점 많아지고 그에 따라 학생도 많아져.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논문 주제가 있어야 해. 그런데 어느 것에 대해서나 논문을 쓸 수 있으니 주제는 무한대로 널려 있어. 그렇게 해서 써 낸 원고 뭉치는 자료실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그것은 무덤보다도 쓸쓸하지. 만성절이 되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까. 무수한 저작물, 문장의 눈사태, 양의 광적인 팽창 속에서 정작 문화는 실종되지. 당신 나라에서 금서가 된 단 한 권의 책이 우리네 대학들이 토해 낸 단어 수억 개보다 훨씬 의미 있어."
프란츠가 모든 혁명을 동경하는 이유를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때 그는 쿠바에 공감했고 다시 중국에 공감했으나 그들 체제의 잔인성에 역겨움을 느껴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아무런 무게도 없고 생기도 없는 언어의 바다뿐이라고 스스로 쓸쓸하게 인정하고 말았다. 그는 제네바(시위라고는 없는)에서 교수가 되었고 일종의 체념 속에서 (여자들도 없고 승진도 없는 고독 속에서) 조금은 좋은 평판을 받은 학술서적을 몇 권 발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치 성모 발현처럼 사비나가 솟아났다. 혁명에 대한 환상은 오래전에 시들었으나, 그가 혁명에 있어 가장 찬탄했던 것은 잔존하는 나라에서 그녀가 온 것이다. 삶이 위험, 용기, 죽음의 위협 같은 웅장한 규모로 판가름 나는 곳. 사비나는 그에게 인간 운명의 위대성에 대한 신뢰를 심어 주었다.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 나라의 고통스러운 드라마가 투명하게 드러났기에 그녀는 한결 아름다웠다.
아! 사비나는 이 드라마를 사랑하지 않았다. 감옥, 박해, 금서, 점령, 장갑차 같은 단어는 그녀에게는 모든 낭만적 향기가 빠져 버린 추한 단어들이다. 그녀 고향에 대한 아련한 향수처럼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울리는 유일한 단어, 그것은 공동묘지 였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3부 이해받지 못한 말들
10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 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지금까지 배반의 순간들이 그녀를 들뜨게 했고, 그녀 앞에 새로운 길을 열어 주고, 그 끝에는 여전히 또 다른 배반의 모험이 펼쳐지는 즐거움을 그녀의 가슴에 가득 채워 주곤 했다. 그러나 여행이 끝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부모, 남편, 사랑, 조국까지 배반할 수 있지만 더 이상 부모도 남편도 사랑도 조국도 없을 때 배반할 만한 그 무엇이 남아 있을까?
사비나는 그녀를 둘러싼 공허를 느꼈다. 그리고 바로 이 공허가 그녀가 벌인 모든 배신의 목표였다면?
물론 지금까지 그녀에게 이런 의식은 없었고, 그것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항상 베일에 가린 법이다. 결혼을 원하는 처녀는 자기도 전혀 모르는 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명예를 추구하는 청년은 명예가 무엇인지 결코 모른다. 우리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항상 철저한 미지의 그 무엇이다. 사비나 역시 배신의 욕망 뒤에 숨어 있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른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것이 목표일까? 제네바를 떠나온 이래 그녀는 이 목표에 부쩍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