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아가사 크리스티? 아니면 에드가 알렌 포? 어쩌면 홈즈와 뤼팽을 만든 코난도일과 모리스 르블랑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렸을 적 내가 알던 한 친구는 '추리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라는 말을 강하게 부정했다. 진정한 추리소설의 여왕은 앨러리 퀸이라는 것이다.
허허... 물론 앨러리 퀸은 남자다. 그것도 맨프리드 리와 프레드릭 대니라는 두 사람이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자신의 추리소설만큼이나 의문투성이의 행보를 보여줬던 것 이상으로, 이 앨러리 퀸이라는 작가는 수수께끼를 많이 가진 듯 하다. 만약 그 친구가 앨러리 퀸에게 '추리소설의 여왕' 못지 않은 '추리소설의 황제'라는 별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렇게 흥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는 동생 하나가 내가 빌려준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참 괜찮은 책인 것 같다고 말하기에 다음엔 'Y의 비극'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X 다음엔 Y가 오는 법이 아닌가. (물론 X의 비극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Y의 비극을 읽으며 세계 3대 추리소설 혹은 미스테리 소설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이후 추리소설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예를들어 '용의자 X의 헌신'에서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 오히려 슬픔에 잠긴 어느 물리학자의 모습에서 'Y의 비극'에 나오는 도르리 레인의 고뇌가 옅보이는 것이 그렇다.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샘 경관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이 도르리 레인이라는 사내는 어쩌면 100년 쯤 후에 일본에서 물리학자로 환생했는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결론이 밝혀지기 전에 내가 먼저 추리해내겠다는 열정을 불태우며 추리소설을 읽다가 번번이 실패한 일이 떠오른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포와로나 셜록홈즈의 생각을 읽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은 버렸다. 상대가 '페어플레이 추리법'이라는 이름으로 독자와 동등한 입장에서 대결을 펼치는 데에 일가견이 있다는 앨러리 퀸이라고 해도, 나는 애당초 대결할 의지 따위는 갖고 있지 않았다. 단지 레인의 명쾌한 추리에 어디 오점은 없나 살펴보며 이 해괴한 사건의 진실을 향해 따라갔다. 명작으로 이름난 추리소설일수록 독자가 작가를 이길 승산이 적다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다만 유명하다는 것은 추리소설로서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스포일러의 위험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만 잘 피한다면 대부분의 독자가 Y의 비극의 명쾌하고도 흥미로운 결말에 만족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책 값이 도마에 오르고 있는 요즘, 인터넷 서점에서 4~5천원이면 아주 말끔한 책으로 구입할 수 있는 명작 추리소설들은 단비같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