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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스토너를 읽고 존 윌리엄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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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관통하는 관조의 자세와 숙명적으로 관조할 수 밖에 없음에 대한 구조적 이해.

 

관조란 체념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깊은 이해. 
항상 이성적 이유를 동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닌 조금 더 본능에 기반함. 
 
기본적인 욕구, 의식주만 너무 오래 공백 상태로 방치하지만 않는다면 굳이 울지 않았습니다....뭐 어쩌겠어 죽기야 하겠나.
귀저기 안 갈아서 욕창이라도 걸리면 내만 고생하겠나 하는 스탠스. 

 

기어이 울어재끼는 행동은 욕구 충족의 부재 상태가 얼마 동안 지속될지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체력 소모가 너무 큰 행위라 생존에 더 불리하다는 본능적인 접근. 
 
성장 중, 장난감을 가지고 나가 놀다가 동네 친구들이 가지고 놀게 두고 주변에서 졸았습니다. 자는 동안 애들이 장난감을 다 가져가도 관조하면서 돌아와집디다.
이미 내 손을 떠난 것들이고 새로운 소유주가 그걸로 잘 가지고 놀았으면 좋겠다.  

 

작중, 스토너에 대한 묘사도 그렇지만 사실,

삶 속에서 고집을 부리거나 이상한 짓을 했던 것들만 인상적으로 묘사하면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은 많지 않음..

관조할 것은 관조하되 기본적인 삶의 작동력은 구동시키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짐.

 

내가 가질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가진 것들에 대한 필요 이상의 열망보다는 내 손에 진짜로 남겨야하는 것들 살펴보고자 하는 접근 방법.
발산하는 욕구에 일일이 대처하지 않고 각 욕구의 결과물에 대한 가치 판단에 더 비중을 두고 그 외의 것들은 내품에 떨어지면 안고 품에서 넘쳐 흐르면 굳이 집어들려하거나 돌아보지 않는다.

자신의 기대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를 해야 한다.

내가 품에 안고 갈 수 있는 것들 이상으로 안고 갈수 없다는 것을 상세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내게 주어지면 다 안고 갈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볼륨 계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무의식 기대)는 생에를 헤쳐나가고 유지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필요한 작동력이상으로 존재하는 여분의 기대들은 미련의 형태로 삶을 황폐한 방향으로 이끈다.

다 안고 갈수 없는 것들을 바라보며 갈망하기보다는 마지막에 내손에 남아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에 더 집중 하는 것이 좋다.

생에의 기간중, 삶 속에서 우리 뒷통수 어딘가에 달려있는 무의식적 기대,
크던 작건간에 누구에게나 있으며 그것은 삶을 지속하는 원동력, 충동

마지막 순간에 그 충동을 스스로 걷어들일 수 있는 사람은
삶의 관조 즉 기대하는 것을 스스로 멈추고 손에 남아있는 것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니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것을 손에 쥐고 있는사람이다.

관조란 다시 말해 자신이 기대하는 것을 명징하게 아는 사람이다.

 

무엇을 기대했는가에 대한 네가지 의미를 생각하며 떠올린 인생길

 

 

그래 '무엇을 기대했는가?'


독자에게,
책 속에 무슨 반전이 있기를 기대했는가?
삶에 대한 스토너의 적절한 반격이 있기를 기대했는가

만약 그랬다면 그것은 우리의 일반적인 삶들과 실제 닮아 있는 것이 맞는가?

당신을 힘들게 하는 직장 동료 주변 지인들에게 일침을 날릴만한 한방을 준비하고 있는가?

그 기대가 당신을 살게 해주고 있는가?

 

스토너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를 했는가?
대학 시절 스토너의 친구 매스터스는 스토너가 삶에서 기대하는 것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그가 무의식 중에 자신의 삶에서 문학과 교육자의 길 다음 모퉁이에서 기대하고 있는것,

그것은 진리 ,실제 없는 것 그리고 세상이 원한 적 없는 것.
그것들은 스토너가 묵묵히 힘든 삶을 인내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이 되어주기는 하지만 끝끝내 그 모퉁이를 돌았을 때 발견한 것은 그 진리가 맞을까?
아마 예상했던 것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그것'은 스토너가 진리라는 이름을 달고 기다렸지만,

젊은 시절 기대했던 '진리'와는 전혀 다른 영역에 있는 것 임을 이해하고 잠시 당혹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물론 스토너는 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젊은 시절 발간했던 책, 세상에 아무 가치도 만들지 못한 책 이지만 자신의 조그만 일부가 담긴 책 속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한 느낌을 남긴다.
그리고 그것은 진리라는 절대적 규칙이나 문법이 존재하는지는 결국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생의 마지막에 추구되어야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님에 대한 이해를 동반한다.

삶에 대단한 것이 있을거라는 일반적인 무의식 속 기대를 가진 사람들에게,
그 사람의 손에 쥔 것을 보여 달라면서 무엇을 기대했는지 궁금한척 하며 물어보자, 무엇을 기대했는가?
간혹 그 손에 남아있는 것을 마지막에 확인하면서 화들짝 놀라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기대를 직시하지 않고 살아가다가 마지막에 이게 아닌데 이걸 남기려고 한게 아니었는데,

다시 자신이 진짜로 바라는 것을 남길 수 있도록 삶의 연명을 바라게된다.

그것이 미련.

 

독자에게 스토너 자신에게 작가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물어보자,

 

'무엇을 기대했는가?'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는 자조적 목소리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이해하고있다고

아니면 삶이란 이렇게 값어치가 없는 것이라고 배우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다.

뭔가 보편적인 무엇인가를 마지막에 지고 가는것이 아니었던가?

그래 그 보편적 가치는 무엇인가?
그 가치에 대한 소문이 어떤식으로 돌아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에 지고 있는 것이 꼭 남이 봤을때 거창 하거나

나의 성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것이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것은 한가지뿐이다.

그것들을 니가 선택할수 있었던 삶 전반에 걸친 시간.
자유의지를 가진채 세상에 남을 수 있는 동안 주어진 기회의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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